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박경리 삶과 문학, 그리고 통영

글을 쓰지 않는 내 삶의 터전은 아무 곳에도 없었다.
목숨이 있는 이상 나는 또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고, 보름 만에 퇴원한 그 날부터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토지의 원고를 썼던 것이다.

악착같은 집념에 스스로도 무서움을 느꼈다는 박경리 선생,
무엇이 그를 그토록 달구게 했을까…
한 순간도 놓을 수 없었던 창작에의 열망은 그가 흙으로 돌아간 후 비로소 가벼워졌다.

박경리 선생은 1955년 단편소설 「계산」으로 등단했다.
그 후 「김약국의 딸들」,「시장과 전장」,「파시」등 삶의 소용돌이 속을 깊이 파고드는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했다.

1969년에는 대하소설 「토지」의 연재를 시작했다.
그리고 26년의 길고 긴 여정을 거쳐 전 5부 16권으로 「토지」를 완간했다.
원고지 4만여 매, 600명이 넘는 등장인물을 탄생시켰다.

한 평생을 꼿꼿이 문학에 바친 삶, 운명이 아니었다면 거부했을 혹독함이었다.

[토지가 끝나면 해방되는 줄 알았다.…]

가파른 한국사의 정중앙을 거치면서 받아들여야만했던 목 박히는 시련들, 처절한 운명의 사슬을 그는 글로써 끊어내고 있었던 셈이다.

숙명과도 같은 삶의 고통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박경리 선생, 스치고 부딪치고 아프기도 했지만 글 기둥 하나 붙들고 생의 한 가운데를 묵묵히 헤쳐 나갔다.
온 생을 털어 맞바꾼 고독,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외로움은 마르지 않는 샘물의 원천이었다.

[내 인생이 문학이고, …]

1926년 10월 28일, 박경리 선생은 통영에서 태어났다.
통영은 그에게 한 평생 동지였던 문학의 근원이자 뿌리였고, 토양이었다.

결연한 역사의식과 뿌리 깊은 자긍심, 통영이 박경리 선생에게 물려준 것이리라…

[제가 통영에서 탄생했다는 게 매우 중요한 겁니다. 저희들이 어릴 때 민족주의라든지 자주적이라든지 이런데 대해 굉장히 민감하게 어린 영혼에 심어준 게 바로 통영이거든요.]

나고 자란 통영은 본디 그리움이 짙다.
또한 아름다움도 깊다.
삶과 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곳이 바로 통영이다.

박경리 선생은 유년시절을 보낸 후 통영을 떠나있었지만 가슴 속에는 거센 파도가 항시 출렁거렸다.

[세병관 가슴이 떨린다. 진주에서 넘어오던 죽림고개,]

날 것의 통영이 살아 숨 쉬는 김약국의 딸들, 김약국의 다섯 딸과 한실 댁의 파란만장한 삶은 밤바다 속의 풍랑과도 같다.

진한 된장국 같기도, 알싸한 젓국 같기도 한 작품은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삶의 농도가 배여 있다.

소설 속의 간창골, 서문고개에는 박경리 선생의 삶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.

밤새 고독의 등불을 켜고 철저히 자신을 소설 속에 유폐시켰던 박경리 선생, 육신은 작은 방에 묶여 있었지만 소설 속 드넓은 세상을 가로지르며 자유를 향한 깃발은 쉼 없이 펄럭였다.

온 우주를 껴안은 처절한 몸부림 박경리 선생의 삶이자 문학의 본영이다.

[소설도 소우주다.…]

소설 속 인물들은 삼베처럼 질긴 한과 설움이 씨줄과 날줄로 만나 비극을 장식하는데, 박경리 선생의 소설이 비극적 흐름이지만 힘이 묻어나는 것은 진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.

[인생에 대한 물음, 진실에 대한 물은 끈질기게 집요하게 물고 가는… 이 물음을 끝낼 수 없어 글을 계속 쓰는 것이죠.]

실천의 삶, 죽는 그 순간까지 박경리 선생이 고매하고 푸르를 수 있었던 이유였다.

삶도 문학도 흐트러짐 없는 순례길처럼 겸손의 그늘 속에서 살았다.

[스스로의 파문,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 글 쓰는 것만큼 괴로웠다.]

집필을 하며, 삶의 고독을 아우르며 밤새 젖었던 마음은 이른 아침 고추 말리듯 성실한 노동으로 털어냈다.

땀의 노고, 다름 아닌 능동성은 그에게 존재의 이유이자 삶의 자세였다.

[능동성이야말로,]

나비야 청산가자, 소설은 미완으로 끝났지만 떠남으로 삶을 완성한 박경리 선생…

마음에 꽂히던 무수한 빗줄기, 애달픈 몸부림, 끝내 놓을 수 없었던 끈질긴 미련을 이젠 모두 내려놓게 된 것이다.

역사보다 더 역사적인 소설 「토지」소설보다 더 소설같이 살다간 인생, 박경리 선생은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말을 남기고 2008년 5월 5일, 삶의 근간이었던 흙으로 돌아갔다.

내세에는 꽃으로 태어날까, 나비로 태어날까 했건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는 잊히지 않는 이름으로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.